보건타임즈 : 향정신약물 원내 조제문제 있다(?)

정신건강학 신승철 전문의

올해로 의약분업이 시작돼 지금까지 13년째다.
이 제도가 도입될 당시 말과 탈이 많아 의료서비스를 공급해야 할 의료인이나 소비자격인 국민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이제는 대체로 정착이 된 분위기다.
분업 전엔 의료소비자들이 이 약국, 저 약국 찾아다니며 마음 내키는 대로 사 복용했지만 지금은 의사의 처방전에 따른 필요한 약과 양만 먹게 돼 약물의 오남용을 막게 됐다.

그러나 의약분업 당시 정부 당국이 내걸었던 국민 의료비의 대폭 감소라는 측면은 너무나 크게 어긋나가고 말았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일본의 경우처럼 선택적 분업, 이를테면 의료 소비자가 바라는 대로 약국이든, 병원의 원내 조제이든 마음대로 선택할 권리를 갖는 것이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더 바람직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당시 이런 의견을 제안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나 ‘완력’에 무시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의약분업 초기부터 심한 정신질환자, 상이등급 1급 내지 3급, 고엽제 후유증 환자, 장애인 1급과 2급, 파킨슨병, 나병이나 결핵질환자에 한해 병의원이 직접 조제를 할 수 있게 허용했다.

질환이나 장애의 특성상 환자나 가족의 편의를 배려해주는 차원에서 배려해 정했던 것으로 점쳐진다.

무엇인가 부족했던 의약분업 체제가 13년간 시행되면서 문제꺼리가 하나둘 튀어 나오고 있다.

요즘 정신건강학과(이후 정신과)의원에선 원내 처방과 연관돼 새로운 시비가 들끓고 있다.
원내 처방은 원칙상 의사가 직접 조제를 해야 하는 것을 간호사가 대신 조제한다고 해 문제를 삼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 시행령 상으로는 정신과 환자의 경우 자해나 타 해의 위협이 있을 경우만 원내조제를 할 수 있다고 제한을 둬 해석상 문제의 여지를 갖고 있다.
사실 이런 정도의 위험이 잠재된 환자라면 입원치료 등의 조치를 먼저 해야 마땅한 이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진료경험상으로는 원내 처방이 가능한 심한 정신질환자라면 심한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구, 정신분열증), 중증 뇌 손상 환자를 다 포함시켜야 한다.
이들 환자들은 대개 심신 기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미약하다.
이 상태의 환자들에게 원내처방으로만 치료토록 예외를 인정한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와 부합되는 일이라 본다.
심한 정신과 환자들은 준장애인이라 볼 수 있어서다.
사실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복약지도는 상담 중에 흔히 한다.

이들에게 투약되는 정신 약물은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기전이 대단히 복잡하다.
정신과 의사 노릇을 30년 넘게 한 필자도 간혹 어떤 약물의 의외부작용을 일으켜 당황하곤 한다.

만약 부작용을 일으키는 정신약물을 환자가 복용한 뒤 문제를 일으켰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투약한 담당 의사에게로 돌아온다.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도 이에 동의를 할 것이다.
물론 환자나 가족이 원하면 얼마든 원외 처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법자체가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혈압, 주사행위, 채혈 등 의료행위는 간호사가 능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사가 없는 소규모 일반 정신과 의원에선 의사가 약을 직접 조제토록 하고 있다. 대신 의사의 처방 하에 간호사가 조제하면 불법으로 간주한다.

최근 어느 단체에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의료 현장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 고발까지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진료에 열중할 의사들은 바짝 신경에 곤두를 세우고 있다.
솔직히 말해 보자.
정신 약물의 특수성을 충분히 교육받아 조제에 익숙한 간호사가 복약지도는 물론 약의 부작용 등의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는 의사로부터 확인을 받은 약을 환자에게 건네는 일에 무슨 큰 잘못이 있나.
의사의 감독이나 책임 하에 원내 조제 행태는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이를 법의 잣대, 원칙대로 따져본다면 여기에 작은 틈이 있다.
의사가 직접 조제하지 않으면 면허정지가 3개월이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제껏 수 십 만 아니 누적 숫자로는 수 백 만 명의 환자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내왔다.
직접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의료 소비자는 물론 가족들조차 그간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다.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도 이런 일로 문제를 삼는 일은 하찮은 일로만 보일 것이다. 이 단체의 고발정신은 사회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나 누구에게도 이익이 안 되는 일로만 보인다.
하루 속히 이런 현실 상황을 이해한 토대위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융통성 있는 법 개정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