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회장, 13일 병문안 “의료인 폭행 금지법, 진료실내 CCTV 허용 추진” 강조
환자가 자신을 20년간 치료해온 의사를 길이 23㎝ 크기의 등산용 칼로 복부와 손 등을 마구 찌른 끔찍한 사건이 터져 의료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처럼 의료인이 환자로부터 피습당하는 사건이 지난해 경남과 최근 대구에서 잇따라 발생, 의료계 내에선 온통 혼돈스럽다.
게다가 이번사건은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가 정신질환자란 사실에 정신과전공 의사들이 받는 충격파는 더 크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의료계 내에선 의료인이나 진료를 받는 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법적․제도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의료인에게 안전한 진료환경이 구축되지 않는 한 환자의 안전까지 보장되기 어렵다는 게 의료인들의 시각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피해자 김 원장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정신과의원을 운영하던 중 7일 오전 10시 20분께 20여 년 전부터 자신이 진료해오던 환자 박 모(52)씨가 찾아와 아무런 이유 없이 마구 휘두른 23㎝ 길이의 등산용 칼에 복부와 손 등 여러 곳을 찔렸다.
칼에 찔려 피를 쏟던 김 원장은 경북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응급 수술을 받고 현재 치료 중에 있지만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로부터 흉기로 공격을 받았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의협은 김 원장이 “정작 환자로부터 다시 피습당할 것을 두려워 진료현장에 나갈 수 있을지를 매우 걱정하고 있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료실 내에 전기충격기나 가스총 등을 비치해 둘 것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의료인이 처한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을 반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심경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자신이 피습을 당했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환자를 두둔, 병문안을 간 의료계 인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는 후문이다.
응급실 폭력 ‘여전’ 심각
'의료방해 처벌 강화 특별법' 무색
응급실의 경우 이 같은 의사를 향한 폭력은 심각하다.
지난 3일엔 오전 7시 30분 부산 사상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 술취한 장00(30) 씨가 손에 피를 흘리며 들어왔다. 의사 김 모(34) 씨가 엑스레이 촬영을 주문하자 욕설과 함께 주먹부터 휘둘렀다.
장씨는 "돈 벌려고 쓸데없이 엑스레이 촬영까지 하냐"며 욕설을 퍼붓고는 김 씨의 얼굴과 목 등을 주먹으로 때렸다. 장 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지난해 4월에는 호흡 곤란 증세로 부산백병원을 찾은 김00(61) 씨가 피 검사가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다가 점퍼 안에서 흉기를 꺼내 의료진을 위협했다.
응급실 밖에서 대기하던 경비업체 직원이 김 씨를 제지하는 사이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다음 날 김씨는 다시 병원을 찾아와 "신고자가 누구냐"며 난동을 부려 인근 지구대에 인계됐다.
징역형 처벌에 끊이지 않는 ‘욕설과 난동’
의료진 41% ‘부상 경험’ ‥“이미지 실추 우려 고발 안 한다”
이달 초부터 폭력에 처벌을 강화한 '응급의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응급실은 각종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응급실 앞에 법 조항을 고지해도 주폭이나 빠른 처리를 요구하는 환자의 욕설과 폭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개정된 '응급의료법률'엔 진료를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과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의료인들은 응급실 폭력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모 대학병원 김00 교수는 "개정 법 조항을 응급실 앞에 부착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의료진은 욕설 등 언어폭력에 매일 시달리는 데다 난동자가 물건을 던지거나 폭행을 하는 사건이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일어났다"며 지난해 총 15건이나 발생했다고 전했다.
최소 인력만 응급실에 근무하게 하는 작은 의료기관은 더 위험하다.
실제 대한응급의학회가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전문의 41.4%가 '진료와 관련돼 다친 적이 있으며 39.1%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대개 응급실 폭력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의 환자나 가족, 설질을 이성적 제어가 안 되는 주취자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
특별법으로 처벌을 강화하긴 했지만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게 의료인들의 하소연이다.
"의료인이 고발하고 싶어도 최선의 서비스를 강조하는 병원에 이미지가 실추될까 꺼리거나 진료가 빠듯해 일부러 시간을 내 법적인 절차를 밟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형량을 높이기보다 법의 집행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의료인들은 "응급실 폭력에 대한 정당한 법적인 행위를 교육하는 것이 절실하다. 또 신고 즉시 경찰이 출동하는 등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13일 경북대병원에 입원치료중인 김 원장을 위로 차 방문한 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최근 정신과 의사가 치료를 하는 환자로부터 흉기로 공격당한 피습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아직도 안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가 구축되지 않아 불안감 속에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이나 진료실내에 CCTV 설치 허용 등 제도마련에 본격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 회장은 의료인에게 안전한 진료환경이 구축되지 않는 한 환자의 안전도 보장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의료기관 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신분은 물론 이유를 불문하고 경찰이 즉시 체포·연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김 원장은 주변동료 사이에서 환자들에 애정을 쏟아온 데다 부드러운 성품으로 많은 신망을 받고 있었다”며, “그가 안전하게 환자 진료에 매진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의협과 정부 그리고 국회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 원장이 이번 사태를 겪고도 자신보다 환자를 두둔하더라” 며, “의협은 이런 사건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진료 터전이 마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이 터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적근거 마련에 국회나 정부가 미온적이었다는 비난도 쏟아져 나왔다.
송 대변인은 “지난 제18대 국회에서 전현희 의원발의로 의료인 폭행 방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면서 “이번 사건에서 보듯 진료실 등에서 의사를 폭행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가중 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의료인 폭행 방지 의료법 개정안을 재발의해 반드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위로 방문에 노 회장과 송 대변인, 대구광역시의사회 김종서 회장과 민복기 공보이사, 대구 수성구의사회 이성락 회장 등이 함께 갔으며 이들을 경북대병원 이재태 핵의학과 교수(대구시의사회 부회장), 조병채 진료처장 등이 맞이했다.
기사최종편집일: 2024-04-18 11: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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