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타임즈 맛집이야기

◇새조개를 데쳐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라면을 넣어 먹으면 면발에서 우러나는 지방이 새조개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가을 대하, 봄 새조개'라는 말이 있다. 따뜻한 봄 햇살 사이로 쌀쌀한 바람이 느껴지는 요즘 최고의 제철 해산물은 새조개라는 의미일 게다. 새조개는 조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고급 음식이다. 5월 말까지 새조개 축제가 계속되는 충남 홍성군 남당항에서도 ㎏당 3만∼5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봄을 타며 까다로워진 입맛을 달래는 데 새조개만 한 먹을거리는 없다. 회로 먹으면 특유의 물컹하고 짭조름한 맛 뒤에 달짝지근함이 혀끝에 그대로 느껴지며, 데쳐 먹으면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질감의 풍미가 입 안 가득 감돈다. 3월 말까지가 새조개가 가장 맛있을 때라고 하니 더 늦기 전에 천수만이 한눈에 보이는 남당항으로 향하거나 인근 새조개 전문점을 찾아볼 일이다.

#간척사업이 선사한 최고의 해산물
속살에 붙은 발이 새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붙은 새조개는 간척사업을 벌인 연안에서만 서식하는 특이한 조개다. 전남 여수의 가막만이나 고흥 득량만, 충남 천수만 등 남·서해안이 주요 산지다. 특히 천수만에서 잡히는 새조개는 다른 지역 것보다 두세 배나 굵고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철분 등의 영양분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조개는 살집이 굵고 새부리처럼 보이는 발 부분이 검을수록 씹히는 맛이 뛰어나다.

천수만 새조개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 진가가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1984년 간척사업 이후 천수만에서 새조개가 나기 시작했으나 그 대부분이 일본에 수출됐다. 일본은 예부터 새조개를 '도리가이'라고 해서 최고의 초밥 재료로 친다. 지금도 서·남해안에서 나는 새조개 1800t 중 70% 정도가 일본으로 수출된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일부 미식가에 의해 그 맛이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가 크게 늘었다. 새조개는 산란기가 7∼10월로 알을 낳은 뒤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올랐을 때인 1∼3월에 가장 맛이 뛰어나다.

◇봄철 새조개는 '샤브샤브'로 5∼10초간 살짝 데쳐 먹어야 특유의 연한 듯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살아 난다.

# 살짝 데쳐 먹어야 제 맛을 느낀다
이태원 일식당 '해천'(02-790-2464)은 새조개 요리가 맛있기로 소문난 서울의 대표적인 음식점 중 하나다. 이곳 새조개는 하루 전이나 당일 천수만에서 공수된다. 껍질을 깐 새조개는 냉장보관을 하더라도 이틀을 가지 못한다. 무료급식 봉사단체인 '사랑의 밥차'로도 유명한 채성태 사장이 충남 서산에서 횟집을 운영했던 게 인연이 돼 천수만 새조개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새조개는 단백질,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해 빈혈, 현기증, 기억력 감퇴, 심근경색, 고혈압 등의 예방에 효과가 탁월한 보약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새조개는 회로 먹기도 하고 대하처럼 굽거나 초밥·회무침 등으로 먹기도 하지만, '샤브샤브'가 으뜸이라는 게 해천 서남동 팀장의 설명이다. 끓는 육수에 약 5초간 살짝 데친 뒤 꺼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회로 먹을 때의 물컹거림도 사라지고 피로 회복에 좋은 타우린 성분 등이 덜 상한다. 뿐만 아니라 새조개 특유의 연한 듯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살아 있으며 부드럽고 담백한 향이 입 안 가득 맴돈다.

해천의 새조개 샤브샤브는 맑은 물에 무와 대파, 팽이버섯만을 끓여 육수를 만든다. 새조개는 조개의 달콤한 향이 강해 이런저런 재료로 육수를 우려내면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맑은 냄비물이 팔팔 끓으면 조갯살을 넣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꺼내 먹는다. 5초에서 10초 사이면 투명했던 살이 하얗게 바뀌고 부리 쪽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이때 바로 꺼내 먹어야 한다. 덜 데치면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나고, 너무 오래 담그면 육질이 질겨 씹는 맛이 떨어진다.

남은 국물에 라면을 넣어 먹기도 한다. 천수만 어부들이 찾아낸 또 다른 새조개 요리법이다. 튀긴 라면에서 우러나는 지방이 새조개의 감칠맛을 증폭시키는데, 라면 수프는 담백한 맛이 심심하다 싶을 때 아주 약간만 넣는 게 좋다. 남당항에서는 라면 이외에 칼국수를 넣기도 하고 죽을 쑤기도 한다.

# 새조개 제 맛 느낄 수 있는 전문점들
새조개는 양식이 안 된다. 100% 자연산만 있다. 그래서 남당항이나 여수 등 산지를 찾아 먹는 게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 짬을 내지 못한다면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새조개를 산 뒤 그곳 식당에 요리를 부탁하면 된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 찾을 만한 서울의 새조개 요리 명소를 소개한다. 서울에서 새조개 요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종로5가 효제동에 위치한 '노다지 품바'(02-764-5814)다. 이곳도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하며, 천수만산을 주로 요리한다. 우동으로 샤브샤브 뒷마무리를 한다.

천수만 새조개보다 약간 알이 작은 여수 새조개를 전문으로 요리하는 곳도 있다. 논현동(02-543-6030)과 대치동(02-5356-0530)에 자리한 '여수 동촌'의 모든 재료는 여수에서 갓 올라온 것들이다. 대파, 양파, 파프리카 등 야채가 담긴 육수에 시금치 미나리 등 야채 바구니가 별도로 나온다. 육수에 잠깐 담갔다 꺼낸 조갯살을 야채에 곁들여 먹으라는 얘기다. 쫄깃쫄깃해진 새조개를 초장에 찍어 약간 단맛이 나는 시금치, 미나리를 곁들여 먹으면 조갯살만 먹을 때와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