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약을 복용하면서 벌거벗은 채로 굶주린 늑대무리로부터 도망가는 꿈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면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미국 정신과 의사의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끈다.
뉴욕의 정신과 의사 안드레스 마틴은 “매우 흔한 현상이다. 항우울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환자가 ‘기분이 나아졌지만 아주 생생한 꿈을 꾼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항우울제, 항생제, 베타차단제, 혈압약, 콜레스테롤 저하제 스타틴, 알츠하이머와 파키슨병 약 등 악몽을 초래할 수 있는 처방약의 종류는 다양하다.
복용 초기에 악몽을 유발하는 약이 있는 반면, 중단했을 때 악몽을 꾸게 하는 약도 있다. 알코올,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항히스타민제, 일부 건강보조제도 악몽을 초래할 수 있다.
수면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이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처방약이 얇은 잠-깊은 잠-REM으로 구성된 수면구조를 방해하기 때문에 악몽이 나타날 수 있다.
대개 수면 사이클은 하룻밤에 세 번에서 네 번 반복된다.
가장 생생한 꿈을 꾸게 되는 REM단계는 아침이 가까워지면서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일부 약은 REM 단계를 지체시키거나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며, 복용 중단 시 REM 단계가 매우 길어지거나 격렬해지는 “REM 리바운드” 효과를 초래하는 약도 있다.
크레이튼 대학 나레시 드완 수면의학 교수는 학회지 ‘전문약사’ 6월호에 기고한 “REM수면에 변화가 일어날 때 악몽이 나타난다”란 제목에서 약 복용이 초래하는 수면방해 사례들을 공개했다.
수면전문가들은 수면 사이클 등과 연관된 화학전달체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는 약이 꿈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대개 항우울제, 항히스타민제, 과민성 방광증후군에서 기관지발작까지 다양한 증상에 쓰이는 항콜린계통의 약이 이에 포함된다.
수면제도 수면 사이클을 방해해 악몽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꿈을 꾸는 일이 매우 흔하기 때문에 약 복용으로 초래되는 악몽의 빈도수를 알아내기란 어렵다.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미국수면협회는 악몽을 한번이라도 꾼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90%, 만성적으로 악몽을 꾸는 성인도 5%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악몽의 원인은 수면 무호흡증, 불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낮 동안에 느꼈던 불안 등 다양하다.
미국 현지 수면전문가들은 약 복용을 새로 시작하거나 먹던 약을 중단한 직후 이상하거나 불안한 꿈이 시작됐다면 약과 연관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일부 약에 악몽이나 비정상적인 꿈, 수면방해 등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임상실험에서 환자들이 상담할 생각을 미처 못 하거나 의사가 질문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약에 의해 생긴 악몽이 실제보다 적게 보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듀크의과대학 신경과학자 무랄리 도라이스와미 박사는 “의사의 입장에서 꿈은 판도라의 상자라 할 수 있다. 모든 환자에게 꿈을 물어보기 시작하면 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펼쳐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REM수면이 방해 받았을 때 즐거운 꿈보다 악몽이 초래될 가능성이 많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즐겁거나 무서운 꿈의 목적, 계기와 생물학적 요인은 여전히 과학의 수수께끼다. 진화에 따른 방어기제일 수도 있고 심리치료를 위해 뇌가 스스로 수행하는 작용일 수도 있다”진단했다.
하버드의과대학 알랜 홉슨 박사 등 오늘날의 정신과 의사들은 뇌간에서 발생하는 전기펄스가 시각적 기억이 저장된 두뇌 중심을 무작위로 자극하면서 떠오르는 다양한 이미지를 뇌가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 프로이트의 지지자들은 꿈이 억압된 욕망이나 위협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악몽 자체가 꼭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자주 발생할 경우 만성 수면부족으로 이어져 낮 시간 동안의 기능을 저해하고 당뇨병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이상한 꿈도 있다.
알렉산드라 레인(54세)은 9년 전 수면제와 진통제를 여럿 복용했을 때 꾸었던 자살에 대한 악몽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장 난 낙하산을 갖고 스카이다이빙하거나 자동차 타이어 나사를 제거한 후 산길을 질주하는 꿈도 꿨다.
그때 꿈에 너무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먹던 약을 전부 끊고 사람들이 처방약 복용을 중지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기관 포인트 오브 리턴을 캘리포니아에 설립했다.
그녀는 “그때 이후로 악몽을 꾸지 않았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대부분 복용하던 약을 자의적으로 갑자기 끊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이들은 조금씩 복용량을 줄여가는 것이 금단증상에 따른 악몽발생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약 복용 시간을 바꾸는 것도 수면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마틴 박사는 환자들에게 아침에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먹고 자기 전에는 진정효과가 있는 약을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복용량을 줄이거나 같은 계열의 다른 약으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심각한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에게는 수면유도제가 처방될 수 있다.
발작방지 약 크로노핀, 불면증 방지제 트라조돈,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베타차단제 프라조신은 미국에서 흔히 처방된다.
하지만 이러한 약 자체가 악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수면장애 시 새로운 약의 추가 처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만 사용된다.
만성적으로 악몽을 꾸는 사람들은 이미지연습치료법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1990년대에 시작된 이미지연습치료법은 환자들이 자주 꾸는 악몽을 적은 뒤에 꿈이 좋은 방향으로 끝나는 모습을 상상하는 방법이다.
뉴욕 몬테피오 의료센터의 행동수면의학프로그램 책임자 셸비 해리스는 이미지연습치료법에 대한 사례로 무서운 남자에게 쫓기는 꿈을 계속 꾸었던 젊은 환자의 사례로 예를 든다.
이 환자는 무서운 남자가 초콜릿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펜실베니아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무서운 남자를 먹어버리는 결말을 상상했다.
환자들은 새로운 결말을 여러 주에 걸쳐 하루에 몇 번씩 시각화한다.
연습대상이 됐던 꿈을 다시 꾸지 않게 되더라도 이 방법을 계속해 악몽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해리스 박사는 “악몽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악몽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의사를 찾으라고 주문한다.
이들은 REM수면방해나 지나치게 생생한 꿈은 간질이나 치매, 파킨슨병을 경고하는 조기증상일 수 있다. 악몽이 약 복용 때문인지 다른 문제 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기사최종편집일: 2024-05-10 11: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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