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이 최근 줄도산한 산부인과의 근본회생대책을 수립해줄 것을 정부를 상대로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의협이 정부를 상대로 요구한 대책으로는 ▲현행 병원 설립기준을 원래대로 강화시켜 산부인과 설치해야만 병원설립이 가능 ▲동네 산부인과 진료 활성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제시 ▲만성 적자와 인력난에 시달리는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해 의료수가를 현실화하고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지원책을 강구 시행 등이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주수호)는 12일 이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낮은 출산율, 살인적인 의료보험의 저수가, 현실을 망각한 정부의 선심성 정책과 원칙 없는 탁상행정을 지적했다.
의협은 성명서에서 최근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극심한 경영난을 겪다 자살한 산부인과 원장의 겪은 현실과 높아져 가는 산부인과 폐원율을 소개했다.
의협에 따르면 산부인과 폐원율은 계속 늘어난데다 올들어 전체 진료과목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의협이 밝힌 성명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어가는 산부인과, 근본적인 회생대책 수립하라!”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원가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저수가, 의료분쟁의 삼중고 속에 몰락의 길을 걸어온 산부인과가, 정부의 현실을 망각한 선심성 정책과 원칙 없는 탁상행정으로 인해 고사 직전에 처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역사적인 창립 10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1월 13일, 강원도의 한 산부인과 원장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충격적 비보를 접한 바 있다. 고인은 최근 1년간 월세도 못낼 정도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려온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동네 산부인과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도 줄어들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경영난으로 인해 산부인과 폐원율이 2007년도 8.5%로 평균 폐원율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2008년도 서울시 의원급 의료기관 개폐원 현황을 보아도 산부인과 개원율이 전체 진료과목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임산부와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만 집중돼 전문과목을 살리지도 못하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비보험으로 겨우 연명하는 산부인과 의원들이 부지기수다.
산부인과 매출액을 살펴보면 수입이 높은 상위 30%의 매출액과, 수입이 낮은 하위 50%의 매출액 격차가 타 과보다 현격히 커 무려 12.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 50%의 매출액 평균이 연 평균 5589만원에 불과해 매월 466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수입으로 의원 임대료와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어 의원 문을 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정도다. 상위 30%도 준병원급에 공동 개원하는 경우가 많아 지출이 큰 구조라는 점에서 경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칙 없는 탁상행정과, 현실성 없는 선심성 정책으로 산부인과 개원가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정부는 내과·외과·산과·소아과 등 4개 필수 메이저 과를 포함토록 한 병원 설립기준을 완화해, 산부인과 없이도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일선병원들이 시설 및 장비와 인력에 대한 투자비용이 큰 산부인과를 외면하게 함으로써, 가뜩이나 설 곳 없는 산부인과의 명맥을 아예 끊어버리겠다는 의도나 다름 아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국가 사회적인 이슈로 최우선 해결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산부인과의 씨를 말리고 있는 정부의 자가당착적 제도운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비롯해 말도 안 되는 선심성 보험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산부인과 개원가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찾아가는 산부인과''가 올 상반기에만 1600여명을 진료했다고 하는데, 이만큼의 진료를 동네 산부인과에서 담당하게 하거나 도산하는 산부인과를 차라리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 등을 강구했더라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사업이 활성화 될 경우 당장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몰이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지역의 산부인과 의원들은 결국 떠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며, 결국 그 지역은 더 심각한 의료 소외 현상을 빚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산부인과는 특성상 1년 365일 24시간 언제라도 응급 산모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많은 인력과 시설, 장비 등 고비용의 조건이 요구된다. 특히 최근엔 출산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고, 자주 발생하는 의료분쟁에 따른 책임을 면하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같은 응급시스템을 갖추는 위해선 국가적인 지원책이 적극 뒷받침돼야 하는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산부인과 기피문제도 심각하다. 산부인과 전공의 수는 해마다 미달되어 정원의 60%밖에 수급되지 않고 있으며, 간호인력도 격무를 감당하지 못해 점차 산부인과를 떠나는 등 분만현장을 지킬 수 있는 의료 인력의 절대 숫자가 심각한 부족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언제 분만이 이뤄질지 모르는 특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의 야간 및 공휴일 가산료는 현실을 도외시한 수준이다. 현재 주 5일제가 일반화돼 있어 토요일도 휴무가 된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가산료 없이 오후 1시까지 평일 진료수입으로 산정하고 있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 평일이든 휴일이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급상황에 대기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 의료선진국들과 같이 현실에 맞는 수가 책정이 돼야만 한다.
국가적 투자와 지원책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산부인과이지만, 현행 선진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가로는 도저히 정상적 경영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의사들의 산부인과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동네 산부인과가 발붙일 곳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산부인과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의료계가 무수히 많은 건의를 하고 절박한 호소와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산부인과를 말살하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펴고만 있다.
정부는 산부인과 몰락의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궁극적으로 국가적 재앙이 될 것임을 엄중히 인식하여, 산부인과 회생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하루속히 강구해야 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정부는 산과를 배제하고 있는 현행 병원 설립기준을 원래대로 강화하여, 산과 설치를 포함해야만 병원설립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산부인과 개원가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는 ‘찾아가는 산부인과’ 서비스와 같은 선심 정책보다는 실질적으로 동네 산부인과 진료가 활성화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을 제시하라.
셋째, 만성 적자와 인력난에 시달리는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해 수가를 현실화하고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지원책을 강구해 시행하라.
2008년 12월 12일
대한의사협회
기사최종편집일: 2024-06-14 18: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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