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계약의 실질적 당사자인 가입자를 대표하는 현행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를 재구성해 가입자대표를 정치적, 특히 의료 이념적으로 중립성이 있는 단체에서 위촉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려대 법대 이상돈 교수는 12일 오후 2시부터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병원협회와 국회 손숙미 의원이 공동주최한 ‘건강보험 수가결정체계 이대로 좋은가?’ 정책토론회에서 ‘수가계약제 개선 방안’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현재의 수가계약제에 대한 사회법적차원의 고찰에서 이 교수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제안한 수가조정율을(요양기관 기대치에 훨씬 못미치는) 미리 고정시켜 놓고 그 범위내에서 계약을 체결하려다 번번이 실패한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가서 재정위원회 제시 수준에서 수가를 결정함으로써 수가계약이 사실상 수가고시제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수가계약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의 가입자 대표 구성부터 의료소비자 개인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수가계약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시민패널제도를 채택하여 현 재정위원회 공익대표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재정운영위원회가 이 같은 방향으로 재구성돼 가입자 대표가 독립되면 수가계약은 보험자와 공급자간 이해상충의 대립각을 세우다 결렬되는 과정으로부터 과학적인 자료에 근거해 합리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서 가입자대표는 보험자와 공급자에게 양보를 구하는 설득의 의사소통적 행위가 펼쳐지는 과정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기능에 대해 이 교수는 저수가중심의 공학적인 조절에 머물러 보험자와 가입자를 한편으로 세워놓고 정부가 보험재정정책의 관철을 정당화하는 절차적 정의의 기재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건강보험정책심의워원회는 재정위원회와는 달리 수가계약결정기구 보다는 거시적인 재정관련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로 거듭나야한다고 말했다.
심의위원회 구성은 현행법처럼 가입자대표 8인, 공급자대표 8인, 보험자(및 정부) 대표 4인으로 하되,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공익대표로 그 이름을 바꿔 현행 4인에서 8인으로 늘림으로써 공익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여기서 공익대표로 위촉되는 자에게는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적용해 정부, 보험자, 정부출연연구원에 소속된 자이거나 이 기구로부터 용역을 받아 공급자에게 정부와 보험자에게 유리하고 공급자에게 불리한 연구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는데 관여한지 일정기간이 경과하지 않은자는 공익대표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공익대표 위촉에서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 경험이 풍부한 자에 관해서도 보건(경제)학자에 국한하는 경향을 지양하고 보건학자 외 경제학자, 경영학자, 법학자 등 전문가의 전문분과를 다원화할 것도 요청됐다.
이 교수는 계약법적 차원의 수가계약제 개선방안으로 권한과 의무의 대칭성 측면에서 사실상 수가계약을 강제하는 체제에서 자유시장 활동의 가능성을 확보하여 요양계약제를 검토하고 수가계약 결렬시 패널티를 불인정하고 적정인상율을 적용토록 할 것을 제시했다.
종합적인 개선방안으로 수가계약에 대해 이상돈 교수는 적정수가, 즉 의료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의료평등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비용산정을 지향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하면서 정부 및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보험료율 결정과 수가계약이 쌍방향의 상호작용관계에 놓인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이상돈 교수의 건강보험 수가계약제 개선방안 발제문
건강보험 수가계약제의 개선방안
이 상 돈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I. 수가계약제의 개선 필요성
1. 수가계약제의 빈사상태
2000년 이후 시행된 수가계약은 건강보험의 요양급여비용을 공단과 요양기관 사이의 계약에 의하여 정하는 제도이다. 현재 수가는 점수제로 정하는 데 각 의료행위의 〔 상대가치(점수) × 점수당 단가(환산지수) 〕가 각 의료행위의 수가가 된다. 현행 수가계약제는 오로지 점수당 단가(환산지수)만을 계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⑴ 수가고시제로 전락한 수가계약제
수가계약의 현실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첫째, 수가계약은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제안한, 그러나 요양기관의 기대치에는 훨씬 못 미치는 평균 수가조정율을 미리 고정시켜 놓고, 그 범위 안에서 공단 이사장과 요양기관 대표가 체결하려다 번번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② 둘째, 환산지수의 결정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간 경우에 심의위원회는 재정운영위원회의 제안을 그대로 또는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그러나 요양기관의 기대치에는 역시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③ 셋째,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가계약은 사실상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수가고시에 의해 대체되어버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이런 수가계약의 현실은 수가계약제도가 사회보장적 의료보험체계를 〔 저 보험율 ― 고 보장성 ― 저수가〕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제로 이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⑵ 요양기관의 재정적자와 의료의 왜곡
또한 수가고시는 ―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한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면서도 ― 저수가 중심으로 운영됨으로써 요양기관에게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초래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의료기관들이 재정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특히 병원의 경우에는 의료외 수입(영리사업)을 확장하고, 의료비용을 최대한 줄이며(예: 간호인력의 최소화와 환자가족의 대체노동력 활용), 첨단고가의료장비를 서로 앞 다투어 도입하며, 의원들도 비급여진료영역(예: 성형, 미용)으로 진료중점을 옮김으로써 재정적자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노력은 의료의 발전을 왜곡하고,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하며, 미래의 의료인력을 비급여진료의 비중이 큰 영역으로 편중시키고, 아울러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상업적 관계로 환원시킨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가입자(의료소비자)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매우 심각한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이 불이익은 저수가 정책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또한 저수가 정책 아래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예: 암치료와 같은 중대질병)는 암암리에 다른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장성의 약화(예: 소화제 등의 급여항목제외, 실질적인 본인부담금의 증대)를 대가로 요구한다. 수가계약제의 실패는 정부에게만 ― 저수가 고보장성의 명분으로 시민단체와 연합하고 그로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 뿐이고, 요양기관과 가입자에게는 각각 재정적자와 실질적인 보장성 약화라는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2. 수가계약제의 개혁과제
⑴ 저수가에서 적정수가로
수가는 사회보장적 의료보험체계에서는 자유의료시장에서 형성되는 의료재의 가격에 상응할 정도로 '고수가'여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체제에서 의료재의 생산비용에 버금하거나 의료발전의 효율성을 해칠 정도로 '저수가'이어서도 안 된다. 수가는 어디까지나 ‘적정수가’이어야 한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각 의료분과의 균형 있는 성장 그리고 가입자의 의료재향유의 수준향상을 이루면서도 보험자와 요양기관 모두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아울러 가입자에게도 합리적인 보험료 부담만을 지우는 수가가 적정수가이다.
⑵ 법이론적 분석을 통한 개혁
이런 이해에 대한 보건경제학적 또는 의료사회학적 논의는 매우 활발하며, 의료체제의 이념(예: 의료평등, 의료자유)을 둘러싸고 전개되기 때문에 서로 타협되기가 어렵다. 여기서는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수가계약이 서로 길항관계에 놓이는 세 가지 법적 차원, 즉 사회법적, 계약법적 그리고 단체법적 차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수가계약의 법이론적 분석틀로 삼아 수가계약의 개선방안을 모색한다.
㈎ 수가계약의 사회법적, 계약법적, 단체법적 차원
먼저 수가계약은 흔히 공법상 계약 또는 사회법상의 계약이라고 이해된다. 이는 수가계약이 사회법적 차원과 계약법적 차원을 동시에 가진다는 점을 가리킨다. 첫째, ‘사회법상의’ 계약이라고 말할 때, 수가계약은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그 체계구성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차원, 즉 사회법적 차원을 가지는 것이 된다. 둘째, 사회법상의 ‘계약’이라고 말할 때, 수가계약은 그런 사회(법)적 관계의 형성이 ‘계약’(Vertrag, contracts)이라는 법적 형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차원, 즉 계약법적 차원을 가지는 것이 된다. 수가계약의 현실은 사회법적 차원이 계약법적 차원보다 절대 우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계약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이 수가계약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는 말하는 것은 수가계약제도의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셋째, 여기에 더하여 수가계약은 단체계약으로 체결된다. 즉 요양기관의 대표단체가 공단과 체결한 수가계약은 그 단체에 소속한 의료기관들에게 효력이 미친다. 단체계약을 규율하는 법은 계약을 체결하는 대표에게 보통의 계약과는 다른 권한과 지위를 보장한다. 이 점 역시 수가계약에 중요한 몇 가지 제도적 개선점을 가져다준다.
㈏ 세 가지 차원의 균형성 회복 수가계약이 정당한 법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수가계약의 이 세 가지 법적 차원이 서로 균형 잡힌 길항관계에 들어가야 한다. 도표 1의 왼쪽은 이를 형상화한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수가계약의 현실은 도표 1의 오른쪽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도표는 수가계약이 의료보장을 위해 저수가를 지향하는 사실상의 수가고시제로 전락해온 현실은, 수가고시제가 수가계약제로 개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가계약의 사회법적 차원만 강조되고, 수가계약의 계약법적 차원과 단체법적 차원이 지나치게 억압됨으로써 빚어진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수가계약제를 개선하려 한다면, 수가계약의 계약법적 차원과 단체법적 차원이 어떤 개혁점을 지시해주는지, 그리고 그런 지시가 수가계약의 사회법적 차원을 어떻게 조정해주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II. 수가계약의 사회법적 차원
수가계약은 의료보험을 사회보장의 하나로 구축하는 체계 속에서 기능한다. 그러므로 수가계약은 사회(보장)법의 근본원리에 의해 틀 지워진다. 그런 틀의 세 기둥으로서 형평성(⑴), 공공성(⑵), 자율성(⑶)을 들 수 있다.
1. 의료의 형평성
사회보장으로서 의료보험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국민 개개인이 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사회보장기본법 제2조)게 하기 위해, 질병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중략)…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을 말한다.
⑴ 효율성과 조화된 형평성
그러므로 건강보험은 의료의 형평성을 지향해야 한다. 수가계약도 의료의 형평을 도모하는 방편으로서 자리 잡는다. 의료형평성은 조세법의 형평이념과 마찬가지로 전 국민이 보험가입자가 되어, 소득에 비례한 누진율의 보험료 부담을 지는 제도를 요구한다. 하지만 사회보험도 “형평과 효율의 조화를”(사회보장기본법 제2조) 도모해야 한다. 그러므로 의료의 형평성은 무조건적인 의료평등이 아니다. 그것은 의료평등에의 지향이 의료재의 생산과 의료산업의 성장에서 효율성을 심하게 저해하는 부정의 변증이 일어나기 이전 지점까지만 평등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의료급여법에 의한 보호에 그치고, 건강보험법으로 완전히 보호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⑵ 형평성과 저수가정책의 무관련성
또한 이와 같은 의료의 형평성이나 사회보장성은 저수가와 동의어가 되지도 않는다. 건강보험이 낮은 요양급여비용만을 요양기관에게 지불하면 낮은 수준의 의료(요양급여)만 시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높은 수준의 의료를 원하는 시민들은 사적으로 의료비용을 들여야 하고, 그래서 건강보험료보다 훨씬 비싼 민간보험회사의 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이는 오히려 의료의 사회보장체제를 그 실질에 있어서는 위태롭게 만든다. 같은 사회보험체제를 가지면서도 보험료율이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 독일의 예에서 보듯 의료의 형평성 증대는 오히려 어느 정도까지는 적절하게 높은 수가와 높은 보험료율과 연동되기 쉬운 것이다. 여기서 저수가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거듭된 수가계약의 결렬은 건강보험의 사회보장적 기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가계약제가 저수가정책의 수단이 되거나 희생자가 되는 현실은 지양되어야 한다.
2. 의료의 공공성
⑴ 수가계약에 내재된 공공성
의료형평성은 건강보험에 편입되는 의료를 ‘공공재’에 근접한1) 것으로 만든다. 공공성은 사적 자치의 이념을 제한한다. 예컨대 정당한 이유 없는 요양급여의 거부금지(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제4항), 모든 의료기관의 법률상 당연 요양기관화와 그로 인한 민간의료시장의 폐쇄 등은 의료공공성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요양기관은 지속적으로 의료의 발전을 도모해 양질의 의료재를 공급하려 하지만, 의료공공성의 이름 아래 정부가 요양급여의 기준과 가격까지 통제함으로써(‘규격진료’), 의료수입을 증대시키기 어렵고 동시에 양질의 의료재를 제공한 대가로 상환 받는 비용은 저수가정책과 (심평원에 의한) 비용청구의 삭감으로 인해 그와 같은 공급비용을 완전히 보전 받을 수가 없다. 요양기관이 처한 이런 딜레마는 일단 수가계약에 내재된 공공성의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⑵ 수가계약을 파괴하는 공공성
그러나 이 공공성의 요청이 수가계약의 당사자인 요양기관의 경영정상성을 해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료발전과 의료서비스의 향상 그리고 시민들의 혜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깨뜨릴 것이라는 징후가 뚜렷해진다면 보험료율의 인상과 요양급여가격의 인상이 불가피하고, 그 인상의 부담은 사회보장의료체계의 모든 구성원이 짊어져야 할 몫이 된다. 그런 징후는 공공성의 요청이 의료형평성에 내재한 최소한의 효율성마저 깨뜨림으로써 건강보험의 사회보장성을 약화시킬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양기관을 탈퇴하여 자유의료시장에서 활동할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해놓은 상태, 즉 당연요양기관제를 폐지하고 요양계약제로 가지 않는 상태에서는 더욱 더 저수가와 이를 고수하기 위한 수가계약제의 형해화가 의료의 공공성이란 미명 아래 정당화될 수가 없다.
3. 의료의 자율성
⑴ 공적 자율성의 기제로서 수가계약
수가계약의 자유를 제약하는 의료의 형평성이나 공공성의 구체적 의미는 언제나 일정한 불명확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과연 당연요양기관제가 사회보장의료의 공공성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인지, 보험료율은 어떤 수준이 적정한지, 보험재정의 규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의료인들의 보수 평균은 어느 정도이어야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수많은 의료행위들 사이의 보상가(수가)를 어떤 기준에 의해 어느 정도로 차별적으로 정해야하는지 등등 수많은 문제들은 일종의 '가치문제'이고, 그때그때 정책적 결정에 따라 다르게 대답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문제의 결정은 이제 더 이상 소수의 관료들이 독점해서는 결코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여기서 요양급여의 기준, 가격 그리고 보험료율과 수가 등을 사회보험의료체계의 중요한 사항들을 관련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대화적 의사소통에 의해서, 그리고 시민사회의 공론과 교류하면서 결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보장적 의료보험이라는 공적 체계의 운영이 국가와 관료뿐만 아니라 의료공급자와 의료수요자를 망라한 사적 주체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를 사회보장적 의료보험체계의 ‘공적 자율’이라고 부를 수 있다.
수가계약제는 본래 그런 공적 자율을 기획한 것이었다. 이를 설명해보자. 저수가란 주로 의료형평을 의료평등 일변도로 추구할 때 발생한다. 저수가는 저보험료율로, 저 보험료율은 저급여로 이어지고,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사적으로 더 질 좋은 의료를 개인적으로 사서 누릴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에 사회보장성을 오히려 침해한다. 수가계약제란 바로 이와 같은 악순환을 깨는 요양급여비용의 자율적 결정기제이다. 즉, 수가계약이 독자적으로 적정수가로 체결되면 기존의 저 보험료율과 저급여를 상향 조정시키는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건행정관료가 수가를 정한다면, 저수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그에 의해 이끌린 여론이나 그 단체의 정치적 영향력 및 시민사회에 대한 의료보장의 상징성 유지 때문에 언제나 저수가정책으로 기울기 쉽다. 바로 이런 정치적 방향성을 제어하는 것이 공적 자율의 기제이다. 이 기제는 사회의료보험의 운영을 사적 주체들 사이의 대화적 의사소통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공단 내부의 재정운영위원회나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직속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특히 2002년 이 위원회에 의해 대체되기 이전의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들도 바로 이와 같은 공적 자율의 기제로 만들어진 기구들이다.
⑵ 수가계약의 자율을 위한 가입자 대표성의 확보
현행법상 공단 내부의 재정운영위원회는 수가계약의 실질적 당사자인 가입자를 대표하는 기구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원명단의 단체들처럼 정치적 이념이 뚜렷하거나 사회의 여러 직능을 대표하는 단체나 권력화된 시민단체보다는 가입자의 대표로서는 ― 전국민의료보험제에서는 가입자 대표는 곧 의료소비자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 의료소비자를 대표하는 단체, 즉 다른 영역의 ‘소비자’ 개념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특히 의료이념적으로 ‘중립성’이 있는 단체에서 위촉되어야 한다.
㈎ 재정운영위원회의 재구성 현행법체계에서 그런 단체는 소비자기본법상 단체소송, 즉 “사업자가 제20조의 규정을 위반하여 소비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권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그 침해가 계속되는 경우 법원에 소비자권익침해행위의 금지·중지를 구하는 소송”(소비자기본법 제70조 본문)을 제기할 수 있는 소비자단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단체도 모든 시민단체들이 갖는 관료화와 권력화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가입자 대표의 구성에서 의료소비자 개인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수가계약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시민패널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시민패널은 정부, 보험자, 정부출연연구원 및 어떤 시민단체에도 소속되지 아니한，그리고 이들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수행하지도 않은 순수한 의미의 개인, 즉 보통시민들 가운데 가입자 대표를 희망하는 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성별, 연령, 직업, 계층 등에 있어 편중되지 않도록 가입자 대표 후보자 집단을 일정규모로 짠 다음에 무작위 추첨의 방식으로 일정수의 후보자를 선정하여 가입자 대표로 위촉하는 것이다. 이 시민패널제도는 현행 재정운영위원회의 공익대표를 대체할 수 있다.
㈏ 가입자 대표기구의 독립성과 정보권 재정운영위원회가 이와 같은 방향으로 재구성되면, 그 기구의 조직상 위치가 공단에 소속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수가계약의 계약법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보험자, 가입자, 공급자는 수가계약의 세 당사자가 되는 것이 공법상 계약으로서 온전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가입자 대표는 재정운영위원회를 통해 수가계약에 참여할 것이 아니라 독립된 기구로 설치될 필요가 있다. 그런 기구는 공단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입법론적으로 요양기관 대표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이용할 정보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구성과 조직에서 가입자 대표가 독립되면, 수가계약은 보험자와 공급자가 이해상충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다 끝내 결렬되고 마는 과정으로부터 과학적인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써 가입자 대표들을 설득하고, 반면에 가입자 대표는 자신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보험자와 공급자에게 양보를 구하는 설득의 의사소통적 행위가 펼쳐지는 과정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수가계약체결의 가능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또한 가입자 대표기구가 이렇게 완전히 독립되고 나면, 현재의 재정위원회는 수가계약의 실질적 당사자가 아니라 “제42조제5항의 규정에 따른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제72조의 규정에 따른 보험료의 결손처분 등 보험재정과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는 내부기구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런 내부심의기구의 구성원은 현재와 같은 구성도 무방하다.
⑶ 결렬된 수가계약을 중재하는 기제의 구축
현행법상 수가계약이 결렬되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의한 의결을 거쳐 장관이 수가를 결정하고 고시한다.
㈎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기능현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가계약제는 저수가정책 중심의 수가고시제로 변질되어 버린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환산지수의 결정을 공단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편향’되어 환산지수(조정률)를 결정하거나('공단대변기능'), 고정된 평균 수가조정율의 틀에서 시행되는 요양기관 유형별 수가계약제에 힘입은 유형 대표들보다 우월적인 협상력을 이용하여 그리고 (이른바 수가계약결렬에 대한 페널티로서) 협상시 공단이 최종 제안한 환산지수보다 같거나 낮은 환산지수를 결정함으로써 공단 측에 유리한 수가체결을 강요하는('공단비호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건정심의 기능에서는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가 깨지며, 수가계약법제는 실질적으로 수가고시제가 되어 버리고, 언젠가는 요양기관들로부터 (시민)불복종의 대상이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ㄱ) 사회공학적 조절센터로 태어난 건정심
이런 건정심의 기능은 태생 때부터 예정된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의 시행에서 비롯된 2001년의 건강보험재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정된「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은 오로지 보험재정이 수지균형을 이루도록 의료보험재정의 유입(流入)과 유출(流出)을 (의료체계 자체의 개혁은 없이) 체계내적으로 조절하는 기획을 추구했다. 즉 보험수지의 추이를 ‘계량적 분석’을 통해 면밀히 파악하면서, 보험수지의 균형을 달성하도록, 계량적 분석 결과에 따라 ‘그때그때’ 다양한 수입증가방안과 지출감소방안의 실시여부와 강도를 ‘조절’하려는 일종의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기획이었다. 수가결정도 바로 그런 기획에 예속되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이와 같은 보험재정의 유?출입을 조절하는 밸브의 조작을 맡는 중심기구로 태어났고, 보험재정의 건전화를 지표로 요양급여비용의 유출을 조절할 뿐, 수가계약을 둘러싼 갈등을 중재하는 기구는 아니었다.
이런 기구는 당연히 정부의 직접 조종 아래 놓여야만 한다. 그래서 건정심은 정부가 그 결정을 지배할 수 있도록 짜여졌다. 이 점은 현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성에서 뚜렷이 엿보인다.
1999년 국민건강보험법상의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는 가입자 대표와 보험자의 위원수가 공급자의 위원수와 동수(6인)이고 공익위원도 동수(6인)이어서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현행법상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 정부( 및 정부출연연구원) 보험자 가입자 vs 공급자 vs (순수) 공익대표 〕의 구성비가 〔 14 : 8 : 2 〕가 된다. 더군다나 공단에 속한 재정운영위원회의 위원이 다시 건정심의 위원이 되는 겸직자가 ― 위원으로 임명 또는 위촉된 위원의 소속기관을 기준으로 보면 13기관, 그 기관에 소속된 위원의 동일성을 기준으로 보면 7인으로 ― 매우 많다. 특히 이 가운데는 보험자에 유리한 환산지수 연구를 수행한 교수까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구성에서 보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결렬된 수가계약의 당사자들을 중재할 가능성이 없음은 자명해 보인다. 결국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보험자와 가입자를 한편으로 세워놓고 정부가 자신의 보험재정정책의 관철을 정당화하는 사이비 절차적 정의의 기제라고 할 수 있다.
㈏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개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재정위원회와는 달리 수가계약결정기구보다는 거시적인 재정관련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보험재정의 수지균형을 맞추는 공학적 조절기구가 아니라 사회보장의료의 수준이나 범위, 의료보장을 위해 시민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 등을 ‘정치세력간의 타협가능성’이 아니라 보통시민들로부터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 즉 ‘시민적 합의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거시정책을 세우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ㄱ) 기구의 재구성
이를 위해 현행법처럼 가입자대표는 8인, 공급자대표는 8인으로 하고, 보험자(및 정부) 대표는 4인으로 하되,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공익대표로 그 이름을 바꾸고 현행 4인에서 8인으로 늘림으로써(총 28인) 공익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보장적 의료보험의 수준과 보험료율을 정하는 거시정책에는 의료이념적 결단이 불가피한 것이므로 이 기구에는 소비자단체만이 아니라 근로자, 사용자, 농어업자, 자영업자 단체의 대표가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소비자단체, 근로자, 사용자 단체를 현행 각 2인에서 1인으로 줄이고, 수가계약의 단계에 참여한 가입자 단체의 대표를 한 소비자단체는 제외를 시키며, 남은 3인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 시민패널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ㄴ) 공익대표에서 제척 기피 회피제도
공익대표로 위촉되는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에게는 제척 기피 회피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이 제도는 본래 소송법상 심판기구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제도이지만, 오늘날에는 중재나 조정에도 적용이 확장되고 있는 제도이다. 그 전형은 소비자분쟁을 조정하는 위원들에 대해 이 제도를 적용하는 소비자기본법 제64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제도에 의하면 가령 정부, 보험자(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부출연연구원에 소속된 자이거나 이 기구들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정부와 보험자에 유리하고 공급자에게 불리한 연구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는 데 관여한 지 일정기간(예: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는 공익대표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사유가 있는 자는 보험자, 가입자 및 공급자 사이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중성화하는 제3자의 역할(중재? 조정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주로 보건(경제)학자에 국한하는 경향을 지양하여야 한다. 위촉되는 위원으로 보건학자 이외에 경제학자, 경영학자, 법학자 등 전문가의 전문분과를 다원화하여야 한다.
ㄷ) 중재기구의 독립화
공익대표는 독립된 중재기구로 수가계약을 둘러싼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때 중재기구는 수가계약이 결렬된 요양기관 유형별 대표단체에서 1인, 보험자에서 1인, 그리고 가입자 대표에서 1인이 참여하여 각자의 입장을 개진하여 중재기구를 설득할 기회를 가진다.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건겅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정부대표 가운데 1인을 이 중재기구의 위원장으로 임명하게 한다. 이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중재결정과 건겅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고시가 연계성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중재는 최대한 자율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수가계약의 사회보험적 성격을 고려할 때 일차적으로 일정한 기간 내에 합의에 의한 중재(조정)를 노력하고,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중재재정을 결정한다. 이 결정에 대해 수가계약의 각 당사자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뒤에 설명하는 임시 수가인상율을 적용한다.
III. 수가계약의 계약법적 차원
수가계약도 법적 관계를 사인들이 자유롭게 형성하는 사적 자치의 가장 중요한 기초제도인 계약의 성격을 띤다. 수가계약도 계약인 이상, 자유시장에서의 계약처럼 의료재를 누리는 대가로 지불하는 의료비용을 합의에 의해 형성하고(아래 ⑴.), 합의형성의 전제로서 계약당사자들 사이에 권한과 의무가 대칭적으로 분배되어야 하지만(아래 ⑵.), 이 두 요소가 사회보장적 기획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는 제약을 받게 된다(아래 ⑶).
1. 합의에 의한 수가 형성
수가의 ‘계약성’은 어떤 의료재화에 대하여 얼마의 비용(요양급여비용)을 지불할 것인지를 사회보장적 의료계약의 세 당사자들인 요양기관(의료공급자)과 가입자(의료소비자) 그리고 공단(보험자) 사이의 자율적인 합의에 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 때〈요양급여비용(수가) = 상대가치(행위점수)× 환산지수(점수당 단가)〉인 점을 고려하면, 합의의 대상은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를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상대가치는 절대가격(환산지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재정중립적인 가격체계'이어야 한다는 주장, 그러니까 환산지수가 결정되고 난 뒤에 다시 상대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통해 수가를 인상하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상대가치의 조정은 환산지수에 반영되기 어려운 요양급여비용의 증가분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주로 인상의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인하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현행법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인 상대가치도 근본적으로는 수가계약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2. 권한과 의무의 대칭성
합의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합의의 당사자들 간에 권한과 의무가 실질적으로는 대칭적으로 분배되어 있어야 한다.
⑴ 계약의 강제와 간접적 자유의 보장
이 대칭성의 요청은 수가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와 계약결렬 시에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근거 짓는다. 현행법상 수가계약 체결 시 건정심의 의결을 거쳐 장관이 수가를 고시하는 것은 일종의 계약체결의 강제이다. 그러나 특히 사회간접자본과 관련된 재화의 경우에 계약강제는 널리 허용된다는 점에서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간접자본과 달리 민간이 생산 공급하는 의료재의 경우에는 서비스의 경우에 널리 인정된다. 다만 사회간접자본과 달리 민간이 생산 공급하는 의료재의 경우에는 계약체결의 자유를 간접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① 이를 위해 지속적인 저수가에 맞서 요양기관에서 탈퇴하여 자유의료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요양계약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② 수가계약 결렬에 대한 책임은 계약당사자의 어느 한편, 특히 요양기관에 전속시켜서는 안 된다. 즉, 공단이 제시한 수가보다 낮은 수가를 정해서는 안 되고(페널티제의 불인정), 예컨대 수가인상율의 누적 평균에서부터 관련산업 임금인상율의 누적평균과 직전년도의 물가상승률 가운데 유리한 것 사이에서 직권으로 수가조정율을 결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수가조정율에 의할 때 직전년도의 수가보다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으므로 요양기관에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으며, 공단과 정부도 유·불리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에 수가계약 체결실패의 부담을 수가계약의 당사자 모두가 형평 있게 함께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
⑵ 수가계약내용의 공동형성권
수가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그 내용을 요양기관 대표단체는 보험자와 가입자와 공동으로 형성하는 기회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① 이를 위해서는 첫째, 계약당사자에게 유·불 리가 엇갈리는 환산지수의 방법과 그 연구결과를 당사자들이 서로 참조할 수 있어야 하고, 건정심도 환산지수를 결정함에 있어 모든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참조하여야 한다(＇법적 청문권＇). ② 둘째,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상 공단 이사장만 누리는 심사평가원 자료에 대한 자료 요청권이 요양기관대표단체와 (공단에서 독립하는 경우의) 가입자 대표기구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정보권이 없다면 수가계약의 합의는 형성되기 어렵다(＇정보권＇). ③ 셋째, 요양기관 유형별 수가계약의 체결유무와 체결순서에 따라 수가가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공단이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환산지수의 전체 평균인상율(평균 수가조정율)을 고정시켜 놓아서는 안 된다(평균 수가조정율의 개방성). 한 유형의 요양기관 대표단체와 공단 사이에 수가계약이 먼저 체결되면, 그로 인하여 남은 다른 유형의 요양기관에게 적용될 환산지수의 조정율이 처음부터 제한되기 때문이다.
3. 공공성에 의한 제한
수가계약은 사회보장으로서 의료보장이라는 목적(의료의 공공성)을 달성하라는 정언명령에 의해 제약된다. 이 제약은 수가계약의 세 당사자 구조 그리고 저수가정책과 수가계약의 반성적 구조로 나타난다.
⑴ 수가계약의 세 당사자
수가계약은 사회보험적 의료에 관한 계약이므로 사회보험의 세 당사자인 가입자, 요양기관, 보험자가 모두 수가계약의 실질적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은 〈 보험자와 요양기관 대표단체 〉라는 두 당사자의 구조를 취한다. 이는 보험자가 언제나 가입자를 위해 건강보험을 운영하고, 가입자는 언제나 보험자에 의해 자신의 이익이 대변되는 식의 후견적 관계를 전제한다. 가입자 대표가 공단 내의 재정운영위원회에 속하여 수가계약체결에 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전제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전제는 이해상충은 공급자와 가입자 사이에만 있는 것처럼 만들고, 공급자와 가입자를 수가계약에서 ‘제로섬게임’ 속에 몰아넣는다. 이는 의사가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환자의 이익을 도모해주는 후견적 역할을 수행해온 역사를 완전히 부정한다.
그러나 이해상충은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에도 존재한다. 보험자는 가입자의 지불대리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지불대리는 비용(공단의 운영비용)을 발생시키고, 보험자의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특히 권위적 관료주의에 물들수록 그 비용은 커지며, 이는 가입자에게도 불이익이 된다. 이를 대리인문제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앞서 본 바와 같이 가입자 대표는 공단의 조직에서 독립하고, 의료소비자를 대표하는 단체의 구성원과 시민패널로 구성된 채 수가계약에 실질적인 당사자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가입자 대표는 수가계약에 서명하는 법형식상의 계약당사자가 되지는 않는다. 가입자 대표의 참여는 의사소통적 방식이다. 즉 가입자 대표는 공단과 요양기관대표단체가 제시한 환산지수와 그 근거(연구결과)를 제시?설명을 받고, 양 당사자에게 수가인상율에 대해 일정한 권고를 할 권한을 누리고, 보험자와 요양기관 대표단체는 이를 최대한 존중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게 한다.
⑵ 저수가정책과 수가계약의 상호 반성적 관계
수가계약은 사회보험의료의 비용계약이므로 적어도 고수가를 지향할 수는 없다. 적정수가, 즉 의료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의료평등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비용의 산정에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수가계약제가 저수가정책을 좇는 수가고시제로 전락한 현실은 공공성이 과도하게 실현된 결과이다. 그럴 경우 수가계약은 더 이상 계약이 아니라 그냥 사회법의 기획을 현실에 옮기는 ‘정책이식’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정부(및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보험료율결정과 수가계약이 쌍방향의 상호작용관계에 놓인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거시적인 요양급여비용의 규모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예컨대 수가계약에 의해 더 좋은 의료재화를 가입자가 누리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로 하는 합의가 수가계약의 당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면, 정부는 보험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 물론 시민들의 정치적 지지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서 ―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 다시 말해 수가계약은 보험료율에 의해 거시적으로 수동적으로 제약되는 일방적 관계에 놓이지 않고, 거꾸로 수가계약이 그 체결내용에 따라 ― 보험재정의 적자가 발생하고 이를 메우는 방향으로 ― 보험료율의 거시적 지표를 변화시키는 쌍방향의 관계에 들어가야 한다.
IV. 수가계약의 단체법적 차원
1. 단체계약성의 의미
수가계약은 보험자와 개별 요양기관 사이에 체결하지 않고, 유형별로 요양기관을 대표하며, 의료법과 약사법에 규정된 의약계의 단체(예: 병협, 의협, 치협, 약사회 등)의 장(법 제42조 제1항, 시행령 제23조 )과 체결한다. 체결된 “계약은 공단과 각 요양기관간에 체결된 것으로 본다”(제42조 제2항). 이런 수가의 단체계약성은 노동조합과 회사 사이에 체결되는 단체협약이나 단체보험계약의 현상과 유사하다.
단체계약은 ① 첫째, 개별 요양기관마다 직접 수가계약을 체결할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게 한다(‘거래비용transactioncosts의 축소’). ② 둘째, 거래비용의 감소분은 건강보험의 재정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요양기관에게 귀속할 수가총액을 증가시킬 수 있다(‘더 나은 계약조건의 가능성’). ③ 셋째, 단체계약은 기관대표의 정보력이나 적정수가 연구분석력, 합의창출의 논증능력과 집단적인 교섭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요양기관의 협상력을 강화해준다. ④ 넷째, 이를 바탕으로 수가계약은 보험자와 수많은 요양기관들 사이에 요양급여의 제공과 그 비용의 지불과 관련한 사회법적 관계를 자율적으로 형성하는 자치의 이념을 실현한다(‘공적 자치’).
2. 단체계약성의 제도적 표현
⑴ 직능대표가 아닌 기관대표
단체계약으로서 수가계약의 당사자는 의사, 치과의사 등의 직역(직능)을 대표하는 자가 아니라 개별 요양기관을 대표하는 자이다. 이 점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성에서 공급자 대표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 위원회의 공급자 대표 구성은 수가계약의 당사자성과 내적으로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컨대 단체계약의 당사자로서 병원협회는 의사협회로 단일화하자는 제안은 단체계약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⑵ 협상력의 강화
수가계약의 단체법적 차원은 단체평균 수가조정율을 고정시킨 상황에서 진행되는 유형별 수가계약제로 인해 공단의 협상력이 극대화된 현실이 지양될 것을 요구한다. 평균 수가조정률을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에 의하여) 사전에 고정시켜 놓고 유형별 수가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요양기관의 각 유형들은 다른 유형들보다 먼저 체결하는 것이 유리하고, 뒤늦게 체결할수록 고정되어 있는 평균수가조정률에서 먼저 체결한 수가인상율을 공제하고 남은 조정률의 가능범위에서만 수가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양기관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앞 다투어 계약을 먼저 체결하는 유리함을 얻기 위해 자신의 기대보다는 불리한 수가조정율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유사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약화된 요양기관의 협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① 첫째, 유형별 수가계약제에서 평균 수가조정율을 고정시켜 놓지 않아야 한다. 수가계약을 통한 합리적 비용계약의 산정이 오히려 보험료율의 인상과 같은 거시적인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제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수가계약의 단체계약성은 온전하게 실현되기 어렵다(‘평균 수가조정율의 비고정?개방성’). ② 둘째, 이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 한 유형별 수가계약제가 총액계약제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유보되어야 한다. 총액계약제의 도입은 평균 수가조정율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보험료율 결정의 탈이념화, 합리화 개혁작업이 성공한 이후에나 가능한 개혁사항이 된다(‘총액계약제의 도입유보’). ③ 셋째, 단체계약으로 감소되는 수가계약체결의 거래비용분이 보험자가 독점하지 않고, 요양기관에게 돌아갈 수 있으려면 가입자가 오로지 보험자의 후견을 받는 관계에서 벗어나 요양기관 뿐만 아니라 보험자를 견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양자를 실질적으로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수가계약의 세 당사자 구조’).
⑶ 단체행동권의 제한적인 허용
단체법적 차원의 독자적인 법원리로 노동조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양기관 대표단체의 단체행동권(예: 의료부분파업)이 제한된 범위에서 인정될 수 있다.
㈎ 목적제한 물론 이 권리는 첫째, 정부가 정치적 이유에서 또는 의료평등에 편향된 시민단체의 압력 속에서 저수가 정책을 지속하여〔 저수가→저급여→저수입(요양기관의 만성적 재정적자)→의료기술의 저개발 〕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고 〔 적정수가→적정진료→적정수입(요양기관의 재정건전성)→의료기술의 지속적 개발 〕로 이어지는 순순환을 생성시키는 목적 아래서만 인정된다. 예컨대 보험료율이 독일과 같은 수준에 이른 상태에서는 이런 목적요건을 충족하기는 어렵다.
㈏ 비례성요건 둘째, 의료파업은 ① 수가계약의 체결이 거듭 실패하고 저수가 중심의 수가고시가 거듭 강행되었을 것(‘수가계약제의 중대한 기능장애’), ② 수가계약을 통한 수가인상을 이루기 위해 파업 이외의 다른 수단들(예: 신뢰성 있는 적정수가의 연구와 공론화 및 정부와의 지속적인 대화)이 아무런 실효성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보충성’), ③ 요양기관에게 적자도산을 예측하게 해주는 명확한 징후가 있을 것(‘요양기관의 중대한 경영위기’), ④ 비응급성 진료만을 그것도 매우 제한적인 범위로 의료파업을 할 것(‘의료파업의 필요최소성’)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이런 요건들은 의료파업의 비례성을 구성한다.
㈐ 의료파업의 법적 효과 의료파업이 정당한 목적과 비례성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요양급여에 관련해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제4항이 규정하는 요양급여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비급여진료에 관련해서는 의료법 제15조의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고,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시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이 내리는 업무개시명령(제59조 제2항)을 내려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제59조 제3항)가 인정된다.
기사최종편집일: 2024-05-20 16: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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