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강행한 지 1년이다.
골자는 가격 ‘통제'. 그러나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꼭 필요한 신약을 쓰려고 해도 보험 적용이 거부돼, 주머닛돈을 꺼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약제비 지출을 줄였지만, 환자가 대신 그 몫을 떠안은 셈이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골라 놓은 약만을 쓰라는 것은 진료권과 전문성에 대한 큰 위협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피해자인 환자와 의료계는 잠잠했다. 이 문제가 정부와 제약업계만의 쟁점인 것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보험 적용을 해 오던 약까지 손을 댈 심사다. 향후 5년간에 걸쳐 의약품 목록을 정비한다며, 고지혈증치료제와 편두통치료제를 첫 대상으로 선정했다.
부실한 보험재정은 약제비 적정화방안 추진의 근본 이유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정부였다. 보험료는 빤한데, ‘섣달 그믐날 개밥 퍼주듯' 급여를 확대해 온 것이다.
또 있다. 정부는 의약분업 이후, 조제료라는 명목으로 단순 약 전달 행위에 매년 2조원을 퍼주었다. 제네릭(복제) 의약품이 비싸야 할 이유가 없는데,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해 돈을 갖다 내버린 것도 정부다. 남의 개인 정보나 들추는 건강보험공단을 방만하게 운영하느라 혈세를 낭비한 것 역시 정부였다.
그러더니 이제와 자기가 골라주는 약만 사용하란다. 환자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곳간 열쇠를 맡겼더니, 어느새 안방을 차지하고, 아예 주인마저 쫓아낼 형국이다.
약제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약가(藥價) 통제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약가 외에도 여러 요소가 어울려 총 약제비 지출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약가를 통제하면 전체 약제비 지출은 오히려 증가한다는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약가를 스웨덴의 4분의 1로 통제했지만, 일인당 약제비 지출은 세 배가 넘었다. 낮은 약가가 약 소비를 부추긴 것이다.
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의 잣대는 ‘비용-효과성'이다. 대단하게 들리지만, 실은 일관된 방법론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영국 요크대학 보건경제학센터 드러몬드의 지적이다. “비용-효과 분석을 어떻게 실시하며, 무엇을 넣고 뺄 것인지 합의된 바 없다.”
근원적인 문제가 또 있다. 비용-효과 분석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드는 비용에 비해 효과적일까? 자료 수집은 물론, 결과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데 큰 돈이 든다. 그러나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 비용-효과 분석의 비용-효과성이 입증됐다는 증거를 정부는 한 번도 제시한 적이 없다.
정말 큰 문제는 환자의 건강이 위협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필수약과 대체약이 있기 때문에 진료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부 주장과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약이 많을수록 환자의 건강이 증대된다는 증거들이 적지 않다(릭텐버그, 2003).
효과가 입증된 바 없고, 방법이 허술하며, 환자의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안 되는 제도를 정부는 왜 굳이 고집하는 것일까? ‘사회주의 보건의료에 목을 맨 정부가 관변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관료적 재량권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통제만능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권력이 있으니 통제라는 망치를 휘둘러 보고 싶은 속내까지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근거가 부실한 약가 통제 정책을 실험하듯 집행해 국민을 골병 들게 만드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기고] : 이형기 전문의·UC샌프란시스코 약대 교수
기사최종편집일: 2024-05-02 18: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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